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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은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에게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받는 노벨상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해당 부문에서는 그동안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116회에 걸쳐 120명이 선정됐다.
한강은 지난해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앞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인 지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탄 바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군부 정권에 맞서 한국 및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대북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누그러뜨린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김 대통령은 남북간의 50년 이상 된 전쟁과 적대감 극복을 추진했다. 김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두 국가 간의 긴장 완화 과정의 촉진제가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수상은 한국인으로서는 사상 최초이자 역대 100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점에서도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것은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 수상이며, 아시아 작가 수상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한강은 앞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받은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매츠 말름 종신위원장은 1시간 전 수상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한강은 “다른 날처럼 보낸 뒤 막 아들과 저녁을 마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벨 문학상은 이날까지 121명이 받았으며 이 중 한강은 18번째 여성 수상자다. 이웃 일본에서는 1968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1994년 오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라빈드라라드 타고르가 1913년 최초로 수상했다.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에 대해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음악과 예술에도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1993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후 2년후에 소설가로 등단했다면서 글쓰기에 있어서 장르상 큰 폭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림원 측은 2007년 발표한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후의 작품 세계도 상세히 소개했다.
1993년 시에 이어 이듬해 소설로 등단한 한강은 서정적인 문체와 독특한 작품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그동안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등의 소설과 더불어 시집과 동화책을 두루 펴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국내외 독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흡인력으로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여왔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5년 만에 발간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고, 올해 초에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 사건의 비극에 접근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인선의 엄마 정심의 기억에 새겨진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8월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됐다.
최경란·피에르 비지우가 번역했다. 프랑스 현지 출판사는 초판 5000부를 인쇄했다가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이후 1만5000부를 새로 찍기로 했다.
한국인 최초 부커상 수상
한강은 앞서 지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강한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인 질병)를 지닌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는 이야기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어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란 찬사를 보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해외 4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소년이 온다’, ‘흰’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판매됐다. 한강은 한국소설문학상·이상문학상·동리문학상도 받았다. 한국 문단의 거장,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기도 하다.
세계에 한강의 문학이 알려진 데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37)의 공도 컸다.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21세까지 오직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알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 한·영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영국에 한국어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단 점에 주목해서다. 이에 불과 6년 전인 2010년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 오늘에 이르렀다. 스미스는 “번역할 때 문학적 감수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보편적 주제 ‘폭력’, 서정적 언어로 탐구
한강은 소설을 통해 일관되게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류 보편의 주제인 폭력의 문제에 접근, 특유의 서정적이며 미려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1998년 발표한 첫 장편 ‘검은 사슴’부터 폭력과 삶의 비극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문학성과 주제의식이 정점에 이른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종류의 폭력이 담겨 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한강이 폭력의 비극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당시엔 서울에 살고 있어 직접 현장을 보진 못했으나, 13세 때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보여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첩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원)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이날 문학상에 이어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로써 한강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니 모리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